[MK TECH REVIEW] 사람보다 빠르게 연기 감지…매의 눈 'AI 파수꾼'

April 1, 2022

대형산불 피해 더 줄일 수만 있다면… 경북·강원 재난사태에 화재 조기감지 주목

"지난해 4월부터 강원도청, 국립공원관리공단, 산림청 등 연락을 안 해본 곳이 없어요.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황영규 대표는 최근 경기도 판교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자사의 산불 감지 기술을 설명하며 연방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달 초 경북·강원 일대를 휩쓴 대형 산불로 대한민국이 수조 원의 막대한 손실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3월 4일 경상북도 울진군의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산불로 기록됐다. 정확한 발화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초 발화 지점에서 차량이 3대 지나간 후 산불이 발생했기 때문에 담뱃불로 인한 실화로 추정된다.
지난 5일에 시작된 옥계면의 산불은 60대 남성 이 모씨가 토치로 불을 질러 시작됐다. 방화로 인한 화재 중 역대 최대 규모로 남았다. 이번 재난 사태는 대형 화재를 미리 감지하고 초기에 막는 디지털 기술 대응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매일경제가 알체라를 직접 찾은 이유 역시 이 업체가 인공지능(AI) 영상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산불 감시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학습시킨 AI 기술을 미국 서부의 한 카운티가 활용하고 있다.

알체라는 원래 출입·근무 관리 등 주로 얼굴 인식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왔다. 2019년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출입국 관리에 사용되는 얼굴 인식기를 공급해왔고, 이듬해부터는 외교부와도 협력해 여권 수령 시 본인 확인을 위한 얼굴 인식기를 만들었다.

그러던 이 회사가 화재 감시 기술 개발에 뛰어든 것은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난 화재가 계기가 됐다. 당시 출장차 캘리포니아에 방문한 황영규 알체라 대표가 산불을 보고 AI를 이용해 화재가 번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황 대표는 이를 위해 회사가 이미 갖고 있던 영상 분석 기술을 이용했다. 평소 폐쇄회로(CC)TV를 이용해서 산의 모습을 감지하다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즉시 이를 자동으로 인식해 알려주는 방식이다. 알체라가 개발한 화재 감지 솔루션 파이어스카우트(FireScout)는 실증 사업에 맞춰 야간 산불 감지 기능을 새롭게 탑재해 24시간 산불 감지가 가능한 것이 가장 특징이다. 지속적 학습 기법(CL)을 활용해 산불 감지를 방해하는 도시 불빛, 자동차 전조등 등을 추가로 인식할 수 있게 됐다. AI가 기존 학습으로 얻은 주간 화재 감지 성능을 유지한 채 새로운 학습으로 야간 화재까지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산불 발생 위치 추정의 정확도 또한 향상됐다. 미국 최대 산불 감시 기업인 '얼러트와일드파이어'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방향을 추정해 지도에 표시해주는 기능까지 구현했다.
알체라 시스템이 산불에 의한 연기의 발생 방향을 알려주면 미국 소방대가 즉각 출동해 화재 진압에 나서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불 감지 시스템은 이미 해외에서 성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3월 캘리포니아주 와인 산지인 소노마 카운티와 2년 계약을 맺고 이곳에서 나는 산불을 감시하는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주요 화재 2건, 연기 감지 알람 100건을 통해 와인 농장의 피해를 막았다.

같은 해 6월부터는 미국 서부 최대 전력 회사인 PG&E(Pacific Gas and Electric)와 산불 감지 시스템 실증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PG&E 카메라 140대 중 46대에 파이어스카우트가 적용돼 있다.

최윤진 프로덕트오너(PO)는 "지난해 8월 '리버파이어'라는 큰 화재가 발생했을 때 파이어스카우트가 인간에 비해 산불을 8분 일찍 발견해 피해액을 줄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공공기관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해당 시스템이 조기에 도입되지 못했다.

첫 번째 장벽은 데이터 제공 문제다. 송전탑마다 다량의 CCTV를 보유하고 있는 기관 측에서 영상 제공에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다. 알체라가 미국 얼러트와일드파이어를 통해 과거 7년간 영상 데이터를 제공받으며 화재 감지 기술을 고도화한 것과 대조적이다.
개인정보와 관계없는 공공 영역의 정보를 과감히 풀어서 대형 재난을 방지하는 혁신 기술을 키우는 미국식 접근이 시급하다는 게 알체라 측 입장이다. 황 대표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전국에 설치한 카메라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실시간 열람이 가능하다"며 "관련 기관에서 데이터 공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장벽은 국내 공공기관에서 클라우드형 시스템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알체라가 채택한 클라우드 기반의 시스템을 설치하기 어렵고, 내부에 서버를 두는 구축형 시스템을 요구하는 등 기술 혁신 방향과 역행하는 접근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 PO는 "클라우드 시스템은 지속적인 성능 개선과 기능 추가가 이뤄지는 반면에 구축형 시스템은 한번 설치해 놓으면 더 이상 업데이트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클라우드 보안인증' 등 보안 관련 대비책도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국내 산불 감시는 최신 정보기술(IT) 대신 사람의 눈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림청 산불방지과에서는 매년 경상북도 1200명, 전라남도 1100명 등 전국에서 1만명가량의 산불전문예방진화대를 선발해 산불 감시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으로는 산불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들의 시급은 8720원, 일당으로는 약 7만원이다. 매년 7개월 정도 근무하는 계약직인 데다 대다수 지원자가 농한기에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60세 이상의 고령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헌신하는 어르신 산불감시원의 노고와 별개로 위기 징후를 이보다 빨리 포착할 수 있는 기술 진보를 적극 흡수하려는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내 기술 도입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가 높은 규제 장벽을 체험한 알체라는 일단 해외로 눈을 돌렸다. 파이어스카우트를 국내가 아닌 호주에서 먼저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황 대표는 "호주에서는 산불로 인해 한 해 동안 코알라 6만~7만마리가 피해를 입고 있다"며 "올해 상반기 중 호주에도 파이어스카우트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2019년 발생한 화재로 50억호주달러(약 4조6000억원) 피해가 발생하고 야생동물 10억마리가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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